연애&결혼2014. 9. 6. 02:44

좀 긴 글이 쓰고 싶었다. 아니, 뭔가를 끄적이며 진득하게 앉아 있고 싶었다. 일단 좀 놀랐다.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곳에 2년 전 장난삼아 쓴 단 하나의 포스팅에 그동안 방문자가 꾸준히 3만을 넘었다니. 나 그래도 대한민국 브라질리언 왁싱 발전에 1g 정도는 일조한 게 아닐까?

 

 

연애

첫 포스팅 이후 두 번의 연애가 나를 스쳐갔다. '스쳐갔다'가 아주 적절한 표현 같다. 내가 스친 것도 아니고 무려 연애가 나를 스쳐 갔다. 비교적 연애기간이 짧은 나로선 거짓말 조금 보태면 시작 즈음 대충 이 연애는 얼마나 갈 지 감이 오는 지경이다. 스쳐간 연애 둘 다 애초에 길게 갈 건덕지는 보이지 않았고 그래도 일단 서로 끌리므로 어쩌겠어, 저지르고 보는 거지. 혹시 관계의 양상이 의도치 않게 변해 장기적 연애로 발전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깐. 물론 한 번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내가, 사람이 잘 안 바뀌는 바로 그 이유거니.

 

 

결혼

한동네 초등, 그 시절은 국민, 친구들과 계모임을 하는데 희한하게 나 빼곤 다 결혼했다. 소주 한두 잔 들어가면 대화의 주제가 자연스레 처와 아이들로 모아진다. 그 때부터 난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면서 술맛이 뚝 떨어지는데 주제가 비록 그럴지라도 내용만이라도 좀 재밌으면 좋으련만 그냥 다 앓고 죽는 소리 뿐이다. 덕분에 난 이 모임을 통해 결혼에 대한 불신이 더욱 확고히 다져지는 중인데 뭐, 고맙다 친구들아 나쁜 건 널리 퍼뜨려야 다음 피해자가 줄어들지. 조만간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 중이다. 결혼한 이 인간들은 낙도 없이 삶 자체가 부정 그 자체인데 다 썩었다 그냥.

 

근데 난 왜 여태 결혼을 못? 안? 했을까. 하다못해 초딩 때 공부도 나보다 좃도 못하고 축구도 좃도 못하고 얼굴도 좃도 못생긴 찐따 영식이도 애가 벌써 둘인데. 그닥 부럽지도 않지만 상투 튼 친구들이 야, 요즘 연애는 좀 하냐? 하고 한 마디 툭 던질 때면 '결혼도 못하고 여태 뭐하고 자빠졌냐'로 들리는 건 괜한 자격지심인지. 시바 내가 늦은 게 아니라 니들이 쓸데없이 빠른 거래두? 됐고, 나 탈퇴한다니까.

 

 

연애&결혼

결혼 안 하고 연애만 하고 살 순 없을까? 물론 지인 중엔 결혼 후에도 연애하듯 사는 선배도 있다. 십년차를 바라보지만 일단 애기를 가지지 않았고 맞벌이를 하는데, 본인은 일인기업 CEO라 세계를 무대로 출장이 잦으며 형수는 대한민국 최선두 포털회사에서 매 주 페북에다 연애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주신다. 한마디로 돈 걱정은 그닥 없다. 뭐 그쯤 되면 결혼을 하고도 계속 연애의 느낌 충분히 이어갈 수 있으리라.

 

얼마 전 아주 맘이 잘 통하는 한 여성과 까똑 대화 중에 내 연애에 관한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했다. 그녀도 나도 감정의 유통기한이나 소모되는 섹스 등의 담론엔 회의적인 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내 증상인즉, '초반부터 애들마냥 호기심 가득한 섹스로 시작돼버린 연애가 둘의 관계에서 미처 정신적인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감정이 시들어버린다.' 였고 물론 그런식이면 결코 연애가 오래가지 못한다는 점은 당연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그 습관의 틀에서 벗어나보지 못했단 것. 나란 치는 여자 앞에 서면 언제나 본능이 이성을 압도하는 미천한 짐승였나보다.

 

 

 

 

뭐 그래서 간헐적으로나마 대화를 튼지는 수 년이 됐지만 아직 일면식도 없는 이 여성과는 뭔가 좀 잘됐으면 참 좋겠다. 철저한 사전 정신교육을 서로 공유 중이니까. 실제로 몸을 안 섞었다 뿐이지 이미 머리로는 수도 없는 잠자리를 한 셈이다. 적어도 나는.

 

 

다시 연애

불과 며칠 전 여동생이 결혼을 했다. 연애로 첫만남 후 두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려버렸다. 난 놀라지도 않았는데 너무 빨라 놀랄 타이밍을 놓쳤으니까. 여동생의 결혼을 지켜보면서 연애와 결혼에 관한 내 막연하고 자의적였던 생각들이 살짝 각도를 달리해 어렴풋이나마 자리를 잡게 됐는데, 한가지 확실한 건 결혼은 둘 중 한 쪽이 확실한 목적성을 가지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지 않으면 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. 그 똑부러지던 여동생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매부의 저돌적인 진행 앞에 단 한 번의 태클도 없이 쭉 끌려가더라.

 

아무래도 이쯤 되니 내 다음 연애는 지금껏 겪은 시행착오의 집대성이 될 듯 하다.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 중이다. 유효타 없이 잽만 난무하던 내 연애매치에 뭐가 됐던 한 방 크게 왔으면 좋겠다. 종착점 즈음 자 이제 우리 헤어질래, 결혼할래 귀로에 섰을 때 그 뜨뜻미지근한 기분만은 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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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Tandadivira